반도체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라면 현재의 AI 반도체 호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1995년의 DRAM 호황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에도 반도체는 최고의 성장 산업이었고, 기업들은 앞다투어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뒤인 1997년에는 DRAM 가격이 폭락했고, 아시아 외환위기(IMF)까지 겹치면서 산업 전반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현재의 AI 메모리 호황은 당시와 얼마나 비슷할까?
닮은 점: 폭발적인 수요와 공격적인 투자
1995년에는 PC 혁명이 시장을 이끌었다. Windows 95의 등장과 함께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DRAM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삼성, 현대전자, NEC, Hitachi, Micron 등 주요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2026년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AI가 성장 엔진이다. NVIDIA GPU, AI 서버,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HBM과 DRAM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 SK hynix, Micron은 모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즉, 두 시기 모두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초호황 국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인 차이: Commodity 시장과 Platform 시장
하지만 1995년과 오늘날의 가장 큰 차이는 제품의 성격이다.
당시 DRAM은 사실상 범용 제품(Commodity)이었다. 삼성의 DRAM과 경쟁사의 DRAM은 기능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결국 경쟁력은 생산량과 가격이었다.
반면 현재의 HBM은 단순한 메모리가 아니다.
- 첨단 DRAM 기술
- TSV
- Hybrid Bonding
- 패키징
- 열 관리
- 고객 인증(Qualification)
이 모두 결합된 시스템 제품이다.
이제 고객은 단순히 “메모리 칩”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AI 플랫폼의 일부를 구매한다.
고객 구조도 완전히 다르다
1995년에는 수많은 PC 제조업체가 고객이었다.
반면 현재 시장은 사실상
- NVIDIA
- Microsoft
- Amazon
- Meta
와 같은 소수의 AI 플랫폼 기업들이 수요를 주도하고 있다.
이는 공급 계약, 제품 개발, 투자 의사결정 방식까지 모두 바꿔놓고 있다.
다시 1997년 같은 폭락이 올까?
물론 모든 반도체 호황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현재의 사이클은 단순한 DRAM 사이클이 아니라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1997년에는 공급 과잉이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지만, 오늘날 HBM 시장은 오히려 공급 부족에 가깝다. 또한 기술 장벽도 훨씬 높아 신규 진입자가 단기간에 시장을 흔들기 어렵다.
결론
1995년의 호황은 “DRAM 용량 경쟁”이 주도한 시대였다.
반면 2026년의 호황은 “AI 인프라 경쟁”이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누가 더 많은 메모리를 생산하느냐가 승부를 결정했다면, 현재는 누가 더 뛰어난 HBM, 패키징 기술, AI 생태계를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1997년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과도한 증설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장은 단순한 메모리 산업이 아니라 AI 인프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미래의 승자는 생산능력보다 기술력과 생태계 경쟁력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